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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스마트홈 시대를 여는 AI 스피커

글쓴이 Michael() 2017년 12월 12일

2000년대 초반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개념이 세상에 소개된 뒤 자동차, 에너지 관리뿐 아니라 가전, 교육 등 일상의 곳곳에 IT를 융합한 ‘스마트홈(Smart Home)’ 기술이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이제 상상의 미래가 아니라 코 앞의 현실로 다가온 스마트홈, 오늘은 그 중에서도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음성인식 기반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스피커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로,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음성인식’

SF 영화를 보면 꼭 한 번은 나오는 장면, 기억하세요? 주인공이 집에 돌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서에게 조명 켜기, 전화 걸기, 난방 조절 등의 자잘한 명령을 내리는 모습인데요. 가깝게는 영화 <아이언 맨>의 ‘자비스’부터, 멀리는 <블레이드 러너>까지 인간은 늘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고 실행하는 스마트한 비서의 발명을 꿈꿔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그 꿈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죠. 

아이폰에 탑재된 siri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음성인식 AI는 사람의 음성 명령에 따라 연동된 기기들의 물리적인 조작을 실행합니다. 초기 음성인식 기술은 스마트폰에 먼저 적용되었는데요. 2011년 애플의 아이폰 4S에 탑재된 ‘시리(Siri)’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후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와 최근 삼성 ‘빅스비(Bixby)’ 등 운영체제(OS)에 따라 다양한 음성인식 기술을 갖추었지만, 명령의 대부분이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 검색에 국한된다는 한계가 있었죠. 이에 가정에서 더욱 폭 넓고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스피커 형태의 스마트홈 AI 디바이스들입니다. 

이들 AI 스피커는 주인의 명령어를 듣고, 또 답하기 위해 스피커 형태를 띠고 있으며 “OK Google”, “Alexa”, “아리” 등의 특정 명령어(Wake word)가 들리면 활성화됩니다. 스피커라는 형태에 걸맞게 음악 재생, 날씨 확인, 전화 연결 등 다양한 명령을 듣고 수행하는 AI 스피커는 각 기기나 가정 환경에 따라 그 기능이 무한히 확장되기도, 제한되기도 합니다. 

국내외 기업들의 AI 스피커 경쟁

자체 디바이스와 운영체제로 스마트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애플(Apple)과 구글(Google). IoT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 스피커 시장 역시 일찌감치 두 회사가 선점하리라는 예상이 팽배했는데요.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Amazon)이 2014년 ‘아마존 에코(Amazon Echo)’라는 이름의 AI 스피커를 선보인 것입니다. 이 기기에 탑재된 음성 비서의 이름은 "알렉사(Alexa)"로, 아마존, 에코, 컴퓨터 등으로 변경할 수 있으며, 부르면 기기가 음성을 인식하여 활성화됩니다. 음악 재생, 할 일 목록 만들기, 알람 설정, 스트리밍 팟캐스트, 오디오북 재생, 날씨, 트래픽 및 기타 실시간 정보 제공뿐 아니라 음식 주문이나 일상 대화도 문제 없는 아마존 에코는 출시 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시장을 선점했습니다. 

아마존의 echo시리즈애플이나 구글처럼 연동할만한 모바일 OS와 단말기가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지만, 아마존의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여 네트워크에 연결만 되면 스마트폰 없이도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2015년 4월, 아마존 에코는 가정 내 스위치와 조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스마트홈 기능을 강화했으며, 작은 사이즈의 보급형 ‘아마존 탭(Amazon Tab)’과 ‘에코 닷(Echo Dot)’ 등의 시리즈를 연달아 출시했습니다. 더불어 통화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에코 커넥트(Echo Connect)’, 게임용 ‘에코 버튼(Echo Button)’, 터치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에코 스팟(Echo Spot)’과 ‘에코 쇼(Echo Show)’, 쇼핑을 도와주는 ‘에코 룩(Echo Look)’까지 기능 확장이나 강화를 위한 새 기기와 모델이 쉴새 없이 나오고 있는데요.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trategy Analytics)에 따르면 아마존 에코는 다양한 라인업에 힘입어 2017년 전 세계 AI 스피커 판매량 중 68%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구글은 아마존의 발 빠른 시장 선점에 자극 받아 2016년 서둘러 AI 스피커 ‘구글 홈(Google Home)’을 출시했습니다. 대화가 가능한 음성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구글 홈의 활성화 명령어는 그 유명한 “오케이 구글”입니다. 출시 당시 깔끔한 외관과 아마존 에코보다 50달러 저렴한 가격,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및 기기와의 연동 편의성 등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현재 AI 스피커 시장 점유율 약 25%로 꾸준히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죠. 

구글홈과 구글 어시스턴트

구글은 2014년 스마트 온도계 회사 ‘네스트(Nest)’를 인수하며 이를 기반으로 스마트홈 생태계 건설에 야심 차게 도전장을 냈지만,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요.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을 기반으로 한 구글 홈으로 체면을 지켰습니다. 음악 재생, 예약, 스케줄 조회, 메시지 전송 등 기본적인 AI 스피커의 기능은 물론 크롬캐스트나 스마트 허브를 연동하면 가정 내 기기 조작도 가능합니다. 그룹으로 묶어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방마다 두고 여러 대를 동시에 실행시킬 수도 있죠. 특정 사용자의 음성이나 ‘날씨는 섭씨로 알려줘’와 같은 명령은 반복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최근 휴대용 ‘구글 홈 미니(Google Home Mini)’, 음질과 사운드 출력 등 스피커 기능을 강화한 ‘구글 홈 맥스(Google Home Max)’ 등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작동을 위해 구글 홈과 구글 어시스턴트 앱 설치가 필수이고, 아마존 에코에 비해 음성 인식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쉬움으로 꼽힙니다. 

애플은 2017년이 되어서야 ‘시리’를 탑재한 AI 스피커 출시 계획은 내놓았습니다. ‘홈팟(HomePod)’이라는 이름의 이 기기는 경쟁사와 두 가지 면에서 차별화를 두었는데요. 첫 번째는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과 유사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음악’입니다. 홈팟은 애플이 설계한 상향식 우퍼와 7개의 트위터 스피커, 커스텀 A8칩 등을 탑재해 고음질을 제공하고, 공간 인식 기능을 통해 사운드를 자동으로 조절합니다. 애플뮤직, 시리의 플레이리스트와 연동해 사용자의 음악 취향을 학습하고 이를 다른 기기와 공유할 수 있으며, 특정 시기의 차트, 특정 곡의 연주자 등 복잡한 질문에 대한 답도 들을 수 있습니다. 

애플의 홈팟

홈팟의 두 번째 전략은 ‘프리미엄’ 입니다. 출시 발표 당시 애플이 책정한 홈팟의 가격은 349달러로, 약 180달러의 아마존 에코, 130달러의 구글 홈에 비해 두 배 남짓 높습니다. 이는 홈팟을 ‘스피커 모양의 인공지능 비서’이 아닌 ‘똑똑한 스피커’로 포지셔닝했기에 가능한 가격인데요. 2014년 발표 이후 지지부진한 애플의 스마트홈 플랫폼 ‘HomeKit’ 생태계가 완성된 이후 이와 연동할 AI 디바이스를 새로이 개발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nugu 와 nugu mini안타깝게도 세계 AI 스피커를 이끌고 있는 아마존 에코와 구글 홈은 아직 국내에 정식 출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직접 구입을 하거나 온라인 직구로 살 수는 있지만, 설정이나 사용설명서의 언어가 달라 설치와 사용에 불편이 따르죠. 

이를 대체할만한 국내 AI 스피커로는 SK텔레콤이 개발한 ‘NUGU’와 KT의 ‘GIGA Genie’가 있습니다. NUGU는 ‘아리야’라는 명령어를 통해 음성 명령을 내릴 수 있고, 15종의 기기를 제어할 수 있으며, 은행 업무와 쇼핑, 배달 주문 등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TV와 연동하여 기능하는 GIGA Genie는 음성으로 TV를 조작하고 특정 프로그램 다시 보기 등을 명령할 수 있으며, 연동된 스마트폰으로 홈캠, 디지털 도어록, 스마트 플러그 등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AI 스피커의 한계와 스마트홈의 미래

아마존과 구글이 굳건한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AI 스피커 시장은 앞으로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출시일이 잡히지 않은 홈팟 이외에도 페이스북(Facebook)이 내년 초 15인치 스크린을 탑재한 AI 스피커 출시를 예고했고, 삼성전자 역시 ‘빅스비’를 기반으로 한 기기를 내놓을 전망입니다. 샤오미는 자체 운영체제인 ‘MIUI’로 구동되는 저가 AI 스피커를 중국에서 발표해 단시간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죠. 국내에서도 메신저 기반의 카카오와 라인 프렌즈에서 캐릭터를 앞세워 제한된 기능의 저가 AI 스피커를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앞세운 카카오 미니

문제는 AI 스피커의 기능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입니다. 지난 9월 발표된 한국소비자원의 AI 스피커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AI 스피커 사용 전 쉽고 편안한 음성인식 기능이나 일상 대화 기능에 기대감이 높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용 후 음성인식 기능 미흡과 대화 곤란, 소음으로 인한 대화 오인 등의 오류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직은 정확한 음성인식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아쉽다는 뜻이겠죠. 

AI스피커 사용전 기대 기능 사용후 기능 만족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사용자의 불편도 예상됩니다. 최근 아마존과 구글 사이에 AI 스피커 경쟁으로 갈등이 불거졌는데요. 결국 아마존은 자사 쇼핑몰에서 구글 홈과 IoT 기기인 ‘네스트’를 판매 목록에서 삭제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구글은 아마존 ‘에코 쇼’에서 자사의 유튜브(YouTube) 서비스를 볼 수 없도록 차단했고, 내년부터는 아마존의 스트리밍 서비스 ‘파이어 TV’에도 유튜브 영상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입니다. 아무리 스마트한 기기를 가졌다 한들, 공급자가 콘텐츠를 규제하면 모두 무용지물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AI 스피커를 위시한 스마트홈 기기는 앞으로도 더욱 그 기능이 확대되고 다양해질 전망입니다. 올해 전 세계에서 약 2,400만 대의 AI 스피커가 판매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Forrester)는 2022년 미국에서만 AI 스피커 이용자가 1억 7,24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요.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현재 스마트 허브와 센서를 가진 기기에만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스마트홈 시스템 역시 널리 적용되어 AI 스피커의 활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죠. 

비즈니스에서도 AI 스피커를 비롯한 ‘스마트오피스’ 시대가 열렸습니다. 아마존은 지난 달 비즈니스에 특화된 ‘Alexa for Business’를 공개했는데요. 이를 탑재한 AI 스피커를 활용하면 바쁜 업무 중에 음성으로 다양한 명령을 내리고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의실 세팅, 미팅 시간 조율 등의 번거로운 업무를 대신 지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저 음악을 재생해주고 날씨를 알려주는 작은 기계에 불과하지만, AI 스피커 하나로 가능한 미래의 모습은 무궁무진해 보입니다.